전체 글17 아르스 노바와 최후의 음유시인, 기욤 드 마쇼 1 14세기의 중세 유럽 사회는 앞서 초기 고딕시대의 상대적인 평온한과 번영에 비해 커다란 변동이 있었던, 그야말로 혼란과 격변의 시기였다. 12세기에 절정에 달했던 교황권과 교회의 세력은 13세기 말부터 이미 그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정간섭이나 교황권의 우월성 과시 등, 교회의 지나친 야심이 오히려 교황권의 쇠퇴를 초래했고, 더불어 성직자들의 천직 사명감의 결핍과 세속적 권한 행사는 결국 14세기에 들어 교회의 분열을 가져왔다. 더욱이 1309년부터 1377년까지 거의 70년에 걸친 교황의 아비뇽 거주는 로마와 아비뇽에서 각기 존립하는 두 명의 교황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대립하게 함으로써 교황의 권위를 더욱 실추시켰다. 1409년, 이 분열을 수습하고자 피사에서 소집된 종교회의는 두 교황 모두에게 분.. 2023. 5. 31. 방랑시인 : 골리아드와 라틴 세속노래 중세의 세속음악 만들기에서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은 골리아드Goliard들로서, 많은 라틴 단성 세속노래들이 이들에 의해서 10세기에서 13세기 초까지 창조되었다. 아직 대학 중심지들이 확립되기 전인 11세기 초(옥스퍼드 대학은 1167년, 케임브리지 대학은 1209년, 파리 대학은 1170년에 건립되었다), 독일, 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학생들과 젊은 하급 성직자들이 지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지적 인도자를 따라서 옮겨다녔다. 처음에는 학식과 진실을 찾기 위해서 시작했던 방랑이었지만, 일부 사람들은 성직자로서 금욕과 엄격한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세속적인 기쁨을 최대한으로 즐겨보려는 욕망에 빠졌다. 물론 이들 중에는 결국 고해성사를 하고 교회로 돌아간 사람도 있지만, .. 2023. 5. 30. 음유시인 :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 민네징거와 마이스터징거 2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의 음악은 양식적인 면에서 같은 시기의 단성 종교음악과 많은 공통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 선율은 기본적으로 단성 종교음악처럼 가사의 한 음절에 한음이 붙는 단음적 양식이며, 이따금 몇 개의 음으로 구성된 장식적 음형이 주로 프레이즈의 마지막에 나타난다. 음역, 음정 진행과 종지 형태 등에서도 단성 종교음악과 일반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음역은 한 옥타브를 넘는 일이 거의 없고, 선율은 대체로 전통적인 교회선법 체계를 따른다. 그러나 엄격하게 선법체계의 지배를 받는 종교음악과는 달리, 일부 세속선율들은 강한 조성적 중심이 있어 장조나 단조의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단성 종교음악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의 노래들은 라틴 어가.. 2023. 5. 30. 음유시인 :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 민네징거와 마이스터징거 1 서양 문명사의 상당 기간 동안 음악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는 로마 카톨릭 교회였다. 교회는 후원자의 역할 뿐만 아니라, 교육의 터전이나 연주회장으로서도 봉사하는 주요 음악기관이었다. 수천 개의 선율들이 교회의 다양한 의식들에 사용되었으며, 이 선율들은 초기에는 구전에 의해서 조심스럽게 보존되었고, 음악이 기보될 수 있었던 이후에는 필사본들에 기록되어 교회와 수도원에 의해서 보호되었다. 그러나 중세에 '음악 만들기'는 결코 교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교회음악의 발전과 더불어 11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비종교적 또는 세속음악의 성장이 급격히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교회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육성되고 세심하게 보존되었던 교회음악과는 달리, 세속음악은 그것의 보존에 관심을 가질 만한 기관이 없었기 떄문에 상대.. 2023. 5. 30.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