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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 골리아드와 라틴 세속노래

by loeamom 2023. 5. 30.

중세의 세속음악 만들기에서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은 골리아드Goliard들로서, 많은 라틴 단성 세속노래들이 이들에 의해서 10세기에서 13세기 초까지 창조되었다.

아직 대학 중심지들이 확립되기 전인 11세기 초(옥스퍼드 대학은 1167년, 케임브리지 대학은 1209년, 파리 대학은 1170년에 건립되었다), 독일, 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학생들과 젊은 하급 성직자들이 지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지적 인도자를 따라서 옮겨다녔다.

처음에는 학식과 진실을 찾기 위해서 시작했던 방랑이었지만, 일부 사람들은 성직자로서 금욕과 엄격한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세속적인 기쁨을 최대한으로 즐겨보려는 욕망에 빠졌다. 물론 이들 중에는 결국 고해성사를 하고 교회로 돌아간 사람도 있지만, 권력과 부를 탐닉하는 고위 성직자들의 위선적인 삶에 회의를 느껴 교회를 영원히 외면하고 방랑자 부류로 전락한 사람들도 있었다.

골리아드란 반그리스도 교적이며 모든 사회적인 지위로부터 도피한 방랑하는 학생들과 하급 성직자들을 일컫는 말로, 이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전설적인 후원자인 골리아스 주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또는 골리아드들이 폭음, 폭식을 한다는 세평 떄문에, 그리고 입이 험한 자들이라는 의미에서 라틴 어 '굴라gula'(식도, 탐식)에서 그 이름이 파생되었다고도 하고, 혹은 신의 원수인 악마의 화신 골리앗Goliath에서 나온 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골리아드들은 유럽의 마을과 대학들을 방랑하면서 종교 지도자나 세속 지도자들을 공공연히 탄핵하고 사회를 비판하며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은 프랑스 어나 독일어 같은 지방어도 사용했지만, 주로 라틴 어로 시를 쓰고 선율을 작곡했으며, 생계를 위해서 구걸도 하고 거리의 예인 생활도 했다. 특히 독일지역에서 활발하게 활약했고,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다소 덜 활동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의 노래는 술, 사랑, 도박, 정치적 풍자, 그리고 도덕성이나 금욕주의를 비웃는 불경스러운 주제 등 다양한 주제들을 취금한다. 골리아드들이 노래하는 사랑은 트루바두르나 트루베르들이 노래하던 궁정풍의 사랑, 즉 승화된 순수한 사랑이 아니었다. 대신 남녀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특히 육욕적인 면을 부각시켜 환락이나 관능적 쾌락을 찬미했다. 

그들은 또한 세속적 권력이나 부와 밀착된 교황과 성직자들의 위선적인 도덕성을 거부하고 조롱했으며, 따라서 종교적 가사들은 천박한 해석과 조롱의 희생물이 되었다. 그레고리오 성가, 찬미가, 리타니 등 종교음악 레퍼터리들도 조롱의 대상이 되어 익살스럽게 개작되었다. 교회는 이들을 사탄의 사자로 간주하여 교회나 수도원의 소유지에 발을 들여놓는 것조차도 거부했다. 다음의 시들에서 그들이 노래하던 음주, 도박에 대한 예찬, 관능적 쾌락의 찬미, 또는 성직자들에 대한 조롱을 엿볼 수 있다(자크 르 고프, <중세의 지식인들>, 최애리 역, 재인용).

 

"나는 가벼운 것,

폭풍우가 가지고 노는 나뭇잎처럼.

.....

키잡이 없이 떠도는 조각배처럼,

공중의 길을 헤매는 한 마리 새처럼,

닻에도 밧줄에도 얽매이지 않노라.

.....

소녀들의 아름다움이 내 가슴을 다쳤나니,

내가 만질 수 없는 그녀들을, 나는 마음으로 소유하노라.

.....

둘째로, 사람들은 내게서 노름을 비난하는도다.

그러나 노름은 나를 벌거숭이로 만들었으며, 

몸은 떨면서 정신은 더워지나니,

그러면 내 뮤즈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짓는다네.

 

셋째로, 술집 이야기를 해보세나.

......

나는 대폿집에서 죽고 싶다

술들이 죽어가는 자의 입 가까이 있는 그곳에서, 

후에 천사들의 합창대가 내려와 노래하리라.

이 착한 술꾼에게 신이여 자비를 베푸시기를."

 

"영원한 구원보다는 쾌락을 탐하며,

영혼은 죽었으니 나는 육신밖에 상관하지 않노라.

.....

자연을 길들이기란 얼마나 힘든가!

그리고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서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란!

젊은이들은 그렇게 힘든 법칙을 따를 수 없고

생기발랄한 육신을 모른 척할 수 없다네."

 

"성직계급은

속인의 경멸 속에 떨어진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돈에 팔려

귀부인에서 창부가 되는도다."

 

골리아드들의 노래들이 수록되어 있는 시가집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230년경에 바바리아의 남부 지역에서 수집, 필사된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이다. <카르미나 부라나>라는 명칭은 1803년 독일 남서부의 '보이렌Beuren'의 베네딕트 회 수도원 서고에서 발견되었기 떄문에 붙여진 것이라고도 한다.

이 시가집이 수도원 도서목록에 공식적으로 포함되지 못한 것은 외설적이고 불경스러운 내용 때문으로 추측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까지 결코 파기되지 않고 보존되어왔다는 것이다. 이는 많은 수도사들이 오랜 시간 명상 후에 잠시의 휴식을 이 시가집을 통해 얻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한다.

<카르미나 부라나>에는 11세기와 12세기에 씌어진 것으로 보이는 라틴 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된 총 228개의 작품들이 실려 있는데, 도덕적, 풍자적 노래, 사랑의 노래, 음식, 음주, 도박에 관한 노래, 골리아드시, 종교적 연극 등 주제별로 모아져 있다. 이들의 노래는 전례적 가사와 음악을 조롱하거나 풍자했을 뿐만 아니라, 고대 시인들의 시들 또한 패러프레이즈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문학세계에 신선하고ㅗ 새로운 풍자문학의 융성을 가져오게 했다.

이 시가집은 1937년 독일의 작곡가 카를 오르프Carl Orff(1895~1982)가 여기에 수록된 시들 중에서 25편을 뽑아 새로이 곡을 붙여 '카르미나 부라나'라고 발표하면서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서양음악사 100장면(1), 박을미>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