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라인의 예언자, 빙겐의 힐데가르트

by loeamom 2023. 5. 25.

중세의 문화는 대체로 수도원들의 성장에 의해서 형성되었고, 중세의 교회는 교회의식을 증강시켜보려는 열망으로 특히 음악을 장려했다. 그들의 노력 때문에 중세의 예술음악은 대체로 종교적이었다. 여성들 역시 교회를 위한 지식의 보존과 음악 발전에 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중세시대의 이러한 역할이 부여된 여성들은 수녀들이었다. 중세의 수녀들 중에 특히 한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그녀는 서부 독일의 작은 마을인 빙겐의 여수도원장인 힐데가르트였다. 힐데가르트는 오늘날 과학서와 의학서를 남긴 과학자로, 그리고 교회의 특별한 의식을 위해 직접 시와 음악을 만든 작곡가이자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작곡가로 기억된다.

힐데가르트는 독일의 마인츠 근교에 있는 베메르스하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자신들의 열번째 아이를 십일조로 바치겠다고 했던 교회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번쨰로 태어난 힐데가르트를 여덟살이 되자 수도원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힐데가르트는 이미 다섯 살이 되기 전에 환상을 보았던 특별한 아이였으며, 건강이 아주 나빴기 떄문에 부모들은 수녀원으로 보낼 결정을 했다고 한다.

힐데가르트가 보내진 곳은 일반 수녀원이 아닌 디시보덴베르크에 있는 베네딕트 회 수도원으로, 그곳에는 속세를 떠나 은둔 생활을 하는 백작의 딸인 유타와 그녀의 추종자들이 거처하고 있는 독방이 있었다. 힐데가르트는 그곳에서 유타로부터 시편집 암송, 악보 읽기와 살터리 연주 등을 배우며 수녀가 되기 위한 수련기간을 거친 후, 열다섯 살이 되던 1113년에 수녀가 되었다. 그즈음에 이들이 거처하던 곳은 정식으로 디시보덴베르크 수도원 부속 베네딕트 회 수녀원이 되었다. 1136년 유타가 사망하자, 힐데가르트는 수녀들의 만장일치로 수녀원장이 되었다.

1141년 힐데가르트는 자신의 인생에 전환점이 될 만한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 환상으로 인해 탄생하게 된 그녀의 저서 <스키비아스Scivias>('하나님의'길을 알라)의 서문에 그때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으로부터 1141년이 지난, 내 나이 42살 7개월 되던 때였다. 하늘이 열리면서 머리 위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밝은 광채가 쏟아져내렸다. 그 빛은 나의 심장 전체와 가슴을 불꽃처럼, 뜨겁지는 않으나 따뜻하게 비추었다.... 갑자기 나는 시편서, 복음서, 그리고 규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이야기들의 의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함께 힐데가르트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고 말하라는 계시도 함꼐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임무를 행하기에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힐데가르트는 글로 쓰라는 그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후 힐데가르트는 갑자기 심하게 앓아눕게 된다. 결국 이 발병이 신의 계시를 거역한 데 대한 응징임을 꺠달은 힐데가르트는 자신이 본 환상을 글고 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디시보데베르크의 수도원장인 쿠노의 허가를 받아, 자신의 일생 동안 스승이며 조언자이지 친우였던 수도승 볼마르의 도움으로 26개의 묵시가 담긴 <스키비아스>의 저술을 시작했다. 이후 일이 어느 정도 진척되었을 떄, 쿠노는 힐데가르트의 저술 작업을 마인츠의 대주교 헨리에게 보고했다. 이는 교황 유게니우스 3세에게까지 알려져, 1147~8년 트리어에서 열린 종교회의를 통해 그녀의 환상에 대한 진위가 검토되고, 결국 교황의 허가를 받아 책을 완성하게 된다.

작곡가로서의 힐데가르트의 활동은 디시보덴베르크 수도원에 거주하던 1140년대에 시작되었다. 주로 자신의 수녀원에서 부르기 위해 직접 작시, 작곡했던 것들로, 힐데가르트는 1150년대 초에 77개의 시와 음악을 모아 <하늘의 계시에 의한 교향곡>이라는 제목으로 곡집을 만들었다. 이 곡집은 f와 c음이 명시되어 있는 4선보로 그려져 있는데, 여기에는 44곡의 안티폰, 18곡의 리스폰서리, 7곡의 시퀀스 그리고 4곡의 찬미가와 키리에, 알렐루야 등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의 교회음악이 대체로 기존의 성가 선율에 기초하고 있는 반면, 힐데가르트의 음악은 전적으로 독창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음악은 양식적으로 간혹 수도원이나 교회의 전례의식에 사용하는 성가보다는 중세의 민녜징거들의 노래에 더 흡사하기도 했다. 단음적 양식으로부터 화려한 다음적 양식까지를 망라하며, 움역은 때때로 상당히 넓어, 어떤 경우에는 한 옥타브와 7도까지 차지하는 경우가 있으며, 필사가가 실수로 잘못 그려놓은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어쨌든 한 응창송에서 두 옥타브와 7도까지의 음역을 사용한 경우도 있다. 힐데가르트의 극 'Ordo Virtutum'은 최초의 도덕극으로 간주된다. 이 극의 이야기는 영혼이 16가지 덕과 악마 사이에 벌이는 싸움에 관한 것으로, 극적인 시가들과 82개의 과음적 양식의 선율들로 구성되어 있다.

힐데가르트의 음악가로서의 존재는 몇 년 전 그녀의 탄생 900주년을 맞아 재조명되었다. 무엇보다도 여성은 여행의 기회도 극도로 제한받고, 교회 내에서 연주까지도 금해졌던 그 시대의 상황에서, 공식적인 승인을 받고 대중 앞에서 설교를 하고, 자신의 수녀원을 세웠으며, 또한 자신이 경험한 계시를 기록하고, 음악 또한 만들어 남겼다는 그녀의 놀라운 활약은 믿기 어려운 정도이다. 당시의 다른 여성들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던 장애물을 그녀가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공인된 예지능력과 그녀가 보여준 기적들, 그리고 신학, 의학, 과학, 음악, 문학 등 다방면에서 뛰어났던 그녀의 박식한 지식 등에 힘입었던 바가 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