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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스 노바와 최후의 음유시인, 기욤 드 마쇼 2

by loeamom 2023. 5. 31.

14세기에 와서 첫 대작곡가라고 할 수 있는 음악가는 시인으로도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던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1300경~77)이다. 그는 프랑스의 북부지방에 위치한 랭스Reims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성직자가 되었고, 당시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왕(룩셈부르크에 거주하던 보헤미아 왕 요한)을 섬기는 비서관으로 20대 초반부터 20년이 넘도록 룩셈부르크에 거주하면서, 유럽의 많은 도시를 왕과 함께 여행하면서 보냈다. 마쇼는 1346년 왕이 전사한 후, 프랑스로 돌아와 프랑스의 왕족들을 모시게 되었고, 노년에는 자신의 고향인 랭스에 살면서 교회 요직을 맡았다. 프랑스의 여러 귀족들을 위해서 모테트, 다성 미사곡, 기악음악과 세속노래 등, 당시의 유행하고 있는 모든 음악형식을 사용해서 많은 음악작품들과 시를 남겼다. 비교적 많은 작품들이 현재까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작곡가로서 극히 예외적인 일인데, 마쇼에게는 자기 작품을 스스로 교정, 편집하여 아름답게 장식한 필사본으로 만들어 후원자나 친구들에게 증정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쇼는 최후의 음유시인 또는 르네상스 이전의 최초의 자유예술가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페트라르카의 라우라나 단테의 베아트리체와 같이, 마쇼도 60세 되던 해에 18세의 아름다운 귀족 소녀 페롱Peronne과 사랑에 빠졌다. 그들의 사랑은 3년간 열렬히 지속되었지만, 결국 둘의 관계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마쇼의 만년의 시들은 그녀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담긴 다분히 자전적인 시들로, 특히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서사시 '진실한 이야기Voir dit'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 외에도 마쇼가 남긴 시들은 대체로 트루바두르나 트루베르의 전통을 따라, 완벽한 성품을 지닌 고귀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시였다. 그러나 과거의 트루베르의 노래는 단성음악이었지만, 마쇼는 아르스 노바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리듬과 다성음악 형식을 세속노래에 적용했다. 그가 남긴 다성 세속노래는 약간의 양식적인 차이는 있을지언정, 1500년까지 큰 변화 없이 프랑스와 그 주변지역의 작곡가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14세기 문화의 전반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의 세속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마쇼가 남긴 작품 대부분이 세속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음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그가 중세 세속음악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바는, 상성부에 자유로이 창작한 주선율을 두고 다른 두 성부를 악기가 연주하도록 하는 3성부 악곡의 새로운 스타일을 발명한 것이다. 마쇼는 비를레Virelai, 롱도Rondeau, 발라드Ballade의 세 종류의 정형시 형식을 그의 세속노래에 주로 사용했다.
무엇보다도 마쇼의 이름을 음악사에서 길이 남게 한 작품은 그의 다성 미사곡 '노트르담 미사Messe de Notra Dame'이다. 이 곡은 그가 말년에 있던 랭스의 노트르담 대성당 내의 마리아 소예배당에 바치기 위해 작곡된 곡으로 알려진다. 이 미사곡이 가지는 음악사적 의의는 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 상투스, 아뉴스 데이, 이테 미사 에스트 등 여섯 개의 미사 통상문이 처음으로 한 작곡가에 의해서 한 벌의 다성음악으로 작곡되었다는 데 있다. 이전까지 많은 작곡가들이 통상문들을 다성음악으로 작곡하기는 했지만, 어느 누구도 통상문 전체를 한 벌로 인식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므로 마쇼의 '노트르담 미사'는 한 작곡가가 미사 통상문을 한 벌로서 다성적으로 작곡한 최초의 곡인 셈이다.

 

포블 이야기

14세기의 가장 중요한 음악 모음집은 1314년에 씌어진 <포블 이야기(Roman de Fauvel)>이다. 이것은 프랑스 어로 된 삽화가 곁들어져 있는 풍자시로서, 프랑스 왕정의 서기였던 제르베 드 뷔스(Gervais du Bus)의 작품이다. 이 풍자시는 프랑스의 사회 전반에 대한 풍자로 당시에 교회나 국가에 만연했던 사회적, 종교적 타락 등 악덕을 꼬집어 이야기하고 있는데, 허영의 상징인 당나귀를 주인공으로 하여, 교황이나 국왕이나 귀족 그리고 성직자 등 당시의 실존인물들을 동물에 비유하여 이야기를 꾸미고 있다.

여기에서 포블(Fauvel)은 여러 가지 숨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Fauvel'은 '보기 싫은 황갈색 또는 황갈색의 동물'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는 말이나 당나귀를 의미하기도 한다. Fau+vel은 '숨겨진 허위' 또는 '위선'과 같은 의미이다. 또한 Fauvel의 여섯 글자는 각기 여섯 가지의 악덕을 나타낸다 : Flaterie(아첨), Avarice(탐욕), Vilanie(비열함), Variete(변덕), Envie(질투), Laschete(음탕).

이 풍자시가 완성된 이후에 샤유 드 페스탱(Chaillou de Pesstain)은 사회적 부패에 대한 비유나 도덕적 풍자를 더욱 강화시키는 데 적절한 음악들을 세심하게 선택해서, 모테트, 단성음악과 다성세속노래 등 무려 130여 곡 정도를 삽입했다. 이중 다섯 개의 모테트는 필리프 드 비트리의 작품들로 알려져 있다.

 

중세 유럽 사회의 교회와 국가의 갈등

1600년경까지도 유럽의 역사는 모든 세력의 중심이 귀족과 성직자에게 집중되는 시기였다. 특히 중세 최대의 전환기를 맞게 되는 14세기 이전까지 중세사회에서 교회의 권위와 영향력은 절대적인것으로, 왕이나 귀족들이 제한된 현세의 힘을 발휘한다면, 교회는 현세적, 정신적 권위 모두를 소유하고 있었다.

교회는 자신의 교리를 보존하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퍼뜨리기 위해서, 교황, 공의회, 추기경, 대주교, 주교, 사제 등의 성직자 계급제도를 발전시켰다.

한편, 황제들은 허무하게 사라지는 제국을 부흥시켜보려고 투쟁했다. 교회와 국가는 세력의 두 중심지로서 계속적인 갈등을 보이게되고, 이들 사이의 투쟁은 유럽 사의 다음 장을 장식한다.

 

 

<서양음악사 100장면(1), 박을미> 중 발췌